서점원이 들려주는 일상의 이야기

<조금유진> 저자 조유진

입력시간 : 2019-11-07 12:25:17 , 최종수정 : 2019-11-07 12:25:17, 오도현 기자



책 소개


 <조금유진>은 조유진 작가의 에세이다.

 담음 일기장을 만들며 서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작가는, 일상을 관찰하고 발견하고 수집한 보통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함께 나눈 대화, 보고 느끼는 감정, 기쁨과 고마움과 미안함과 서운함과 서러움 등 그 반성과 다짐에 대한 글들은, 일기를 만드는 사람의 일기 같은 글, 마주 보고는 나누지 못할 깊은 이야기이기에 독자들에게 더욱 위로와 공감이 되어 다가간다.



<출처: 이후북스>



저자 소개


 저자: 조유진




목차


 진정 정진  11 / 열받음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  12 / 부지런히 일상을  14 / 예상치 못한 친절은 감동을  15 / 아직은 어려운 사람  16 / 보통의 일상을 의도적으로 꾸며야 한다는 압박감  17 / 저는 에세이를 좋아해요  18 / 사람이 희망이 되기도  20 / 다 같이 사는 세상  22 / 최선을 다해 재잘거리는 순간  24 / 그날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 매일 일기를 썼으면 하는 이유  25 / 고마운 서점, 고마운 시간  26 / 내가 버린 에펠탑  27 / 꽃병  29 / 부디 남은 생은 편안하셨으면  31 / 오늘의 사랑스러운 모습들  33 / 첫 수업  34 / 첫 수술, 첫 입원  36 / 20대  39 / 말랑한 사람  40 / 오고 가는 희망  41 / 나눌 수 없는 고난  42 /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43 / 취향에 대하여  44 / 슬퍼야 쓰는 사람  46 / 마주하는 사람에게 친절을  47 / 생각하고 말하기  49 / 적당한 거리감  52 / 같이 걸을까  54 / 경험을 삽니다  55 / 다리, 그린 스무디  57 / 일어난 일만 걱정하기  58 / 실패는 상상만큼 끔찍하지 않다는 것  59 / 우선, 생활  61 / 우울  63 / 책 선물  64 / 책 모임  66 / 셀프 출근  67 / 잘 지내? 별일 없지?  68 / 우리의 시선  69 / 두 번째 영화  71 / 쓸데 없음의 가치  73 / 50년째 글쓰기  75 / 소박한 행운  77 / 잊혀지는 것들에 대하여 - 만화방  79 / 나를 만든 문장들, 나를 만들 문장들  81 / 자기 전에 아침 얼굴 만들기  82 / 컷 : 25,000원  84 / 글의 양과 질에 대한 고민  86 / 좀 덜 불행하게, 좀 덜 현실적이게  88 / 2018년 최고의 멍청 비용  90 / 좋은 누나 코스프레  92 / 좋은 글은 늘 쓴 글에서  94 / 악필가의 야망  95 / 오늘도 잘 자라야지  97 / 내 주머니 속 작은 괴물  98 / 책 빠아아아앙  99 / 미워하고 미안하고  101 / 편협한 사고 확장하기  102 / 실패에 당당하기  103 / 손님에서 사람으로  104 /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106 / 보이지 않는 것  108 / 그날의 취기와 호기  110 / 바지와 운동화 그리고 백팩  112 / R에게  114 / 낡은 사진 늙은 당신  116 / 나는 외로워도 내 꿈은 외롭지 않도록  117 / 여행과 취향  118 / 불안할수록 불완전할지라도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  119 / 앞으로도 불행하고 행복하겠지  121 / 애정 하는 공간을 지키기 위하여  122 / 사람은 결국 사랑을 먹고 산다  124 / 내가 서운하게 했던 누군가  125 / 비현실적인 현실  126 / 우리  127 / 일탈  128 /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  131 




본문

 

 여러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의 내용은 잊힌다. 느낌만 남는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무언가다.


 '아, 이 책 좋았는데'

 '이 책은 나쁘지 않은데 내 취향은 아니야'


 느낌이 좋은 책을 손님이 고르면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어떻게든 이 책의 좋음을 알리고 싶다. 머릿속에는 완벽한 연설을 하지만 막상 손님이 다가오면 "이 책 좋아요" 또는 "저도 샀어요" 한 마디로 끝난다. 늘 그렇듯 서점 도장을 찍고 책갈피를 넣고 계산을 하고 책을 포장하여 건넨다.


 가끔 서점원을 오랜만에 본 친구처럼 대하는 손님이 있다. 값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재잘거린다. 이 책과 이어진 저 책을 이야기하고, 이 저자와 이어지는 어느 저자 이야기를 하고, 손님과 직원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오가는 마음. 드물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순간, 그 손님.


 - 최선을 다해 재잘거리는 순간, 24페이지 중에서 -



 담음 일기장을 만들고 일기를 쓰는 사람이지만 일기를 안 쓰는, 못 쓰는 날이 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야 일기장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집에 못 가는 날,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우울한 날.


 그날 쓰는 일기에는 그날의 감정이 쓰이지만 다음 날 쓰는 일기에는 이미 잊힌 감정을 꺼내기가 어렵다.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골똘히 써보아도 뭔가 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그날 소비하지 못한 감정은 쌓이게 된다. 좋지 않은 감정이면 더욱더.


 너무 사소해서, 실로 거대해서 친구나 애인에게 말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쓰고 나면 별거 아닌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렇게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잘 버티고 있는 내가 대견해질 때도 있다. 반성하고 다짐하는 잠깐의 시간을 겪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그날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 매일 일기를 썼으면 하는 이유.


 - '그날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 매일 일기를 썼으면 하는 이유', 25페이지 중에서 -



 무슨 말을 하다가 친구가 울기 시작했는지 기억하기에는 꽤나 많은 술을 마셨다. 나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우면서 애틋하다(그리고 귀엽다). 괜찮다는 말에 친구는 더 울었다.


 우리는 옛날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죽은 날, 장례식장에 온 친구는 밤새 있을까 고민하다가 돌아갔다. 학교는 멀고 하필 시험기간이었다. 부모님도 오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그때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오래 있을수록 가까운 친구 같았다. 매일 오면, 식장에 자고 가면, 화장터에 따라오면 더 친한 친구였다. 각자의 사정을 잊고 있었다. 내 엄마가 죽었을 뿐 친구들의 세계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데도.


 이후 친구는 자주 연락했다. 장문의 카톡을 보내도 나는 답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잊고 싶을 정도로 상처였거나, 큰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기억을 잃은 걸까. 친구도 지쳐가던 어느 밤, 술에 취한 내가 친구에게 연락했고, 부모님 몰래 불 꺼진 친구 집에 살금살금 들어갔다. 깨끗이 씻고 잠옷을 입은 친구와 번진 화장에 잔뜩 술에 취한 나, 안 어울리는 우리는 늦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풀린 줄 알았는데 친구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오래 앓았다고 한다. 나도 가족의 죽음은 처음이고 친구도 가족이 죽은 친구가 처음이어서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술의 힘을 빌렸다. 그날의 취기와 호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덜 불안정하고, 덜 예민했다면, 그래서 덜 서운해 했으면 비슷하게 사람들을 잃지 않았을까. 이제는 못 볼 사람들이 그립다.


 - 그날의 취기와 호기, 110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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