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무언가로 고통받고 혼자 감내해야 했던 흔들림의 순간을 엮은 기록

<1429 숨기고자 했던 흔들림에 대한 기록> 저자 이연

입력시간 : 2019-10-31 22:22:47 , 최종수정 : 2019-10-31 22:22:47, 오도현 기자


책 소개


 <1429 숨기고자 했던 흔들림에 대한 기록>은 이연 작가의 에세이다.

 열넷,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홀로 버텨야 했던 시간은 수십 겹씩 쌓여갔다. 자신과 동성(同性)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작가는 말할 수 없는 순간들을 일기장에 쏟아내며 흔들리는 삶을 버텼다. 제목이 말하는 1429는 14살부터 지금의 29살까지, 15년의 시간을 말한다. 작가는 그동안 지속된 불안장애와 사랑, 그리고 고통을 책 속에 담았다.

 작가는 희망한다. 자신의 책이 자신처럼 말할 수 없는 무언가로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출처: 별책부록>


 

 저자 소개


 저자: 이연


 매 순간을 기록하는 기록광이며 삶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저는 1429라는 기록물을 출판한 이연이라고 합니다.



목차


 총 271페이지



본문


 다들 조금 큰 듯한 교복을 입고 새 가방을 메고 쭈뼛거리며 하얀 실내화를 신고서 교실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있는 모두가 어색해하던 입학 첫날, 하얀 피부의 예쁜 아이가 활짝 웃으며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출석을 부르셨다.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듣기 위해 반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울 기세로 집중했다.


 "박 윤희-"

 "네-에!"


 아 윤희구나. 예쁜 애라 이름도 예쁜건가 라는 촌스러운 생각을 하며 그날 하루 종일 그 아이를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그 아이를 찾았다. 불안이 시작되었던 4월에도 학교를 가면 그 아이를 볼 수 있어서 학교에 있는 동안은 웃을 수 있었다. 그러다 이내 방학이 되었고, 학교에선 괜히 혼자 어색해 하며 말도 잘 걸지 않았던 윤희에게 세이클럽 아이디를 물어보았다. 흔쾌히 아이디를 알려주었지만 혹시나 나를 부담스러워 할까봐 눈치를 보며 메신저를 보냈고, 윤희는 핸드폰을 샀다며 번호를 알려주었다. 어떤 날은 메신저로, 어떤 날은 문자로 윤희에게 연락을 했고 윤희는 늘 다정하게 답장해주었다. 답장이 없을 땐 한없이 기다리고, 먼저 연락이 올 땐 웃음이 났다. 윤희가 다른 친구를 만나러가면 괜히 기분이 가라앉기도 하며 그렇게 윤희를 중심으로 방학이 지나갔다.


 - '태어나 처음 느끼는 두번 째 감정 1.' 중에서 -



 일반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평생 지니고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평생 품고 산다는 건 어떤 고통일까. 나의 다름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상처를 받을 사람은 나 하나일까? 만약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숨기고자 했던 나의 어떤 것이 밝혀졌을 때, 그 상처의 깊이는 어느정도일까.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 '상처의 주인은 누구인가' 중에서 -



 매년, 나는 올해는 작년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나에 대한 불안에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했다. 20대의 대부분을 계획한 대로 실행했고 대부분을 계획한 대로 살지 못하였다. 늘 처절하게 연애했고 매번 배신으로 끝이 났다. 연인의 배신으로 하루하루가 괴로울 때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참 열심히도 살았다.


 학교를 다닐 때도, 직장인이 되었을 때도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내 삶을 이렇게 끌고 올수 있었던 건, 지긋지긋했던 두려움 덕분이다. 두려움으로 점철된 인생이 버거웠지만 내 삶도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하루의 삶처럼 될까 봐 두려웠기에 악착같이 버텨냈다. 제대로 살고 싶었다. 인정받고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사람들 속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스물여덟. 몰아치는 고통에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스물아홉의 나는 또다시 버텨냈다.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며 또다시 익숙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버티는 것도 삶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그 상태에서 유지는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스물아홉 겨울, 내 삶은 앞으로 나아고 있다. 삶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최소한 우울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 사실 하나로 됐다. 그거 하나 끊어냈으면 됐다. 일상이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길게 이어진 불행이 끊어졌다.


 20대의 나는 수없이 흔들리고 불행하고 우울했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을 하고 행복을 느끼고 일을 했다. 15년간 여자를 사랑했고, 지금은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이 사랑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낯선 이 감정도 언젠간 익숙해지겠지. 열네 살부터 이어진 수만 번의 불안과 고통들 속에서 이 정도로 살아낸다고 이 정도로 해낸다고 고생 많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서른.

 불안은 익숙하게 나를 찾아오고 고통은 변함없이 존재하겠지만 모든 것은 찰나라는 것을 아니까 괜찮다. 이젠.


 - '나의 20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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