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편의 아프고 우스운 이야기

<아픔집> 저자 마진오

입력시간 : 2019-10-31 20:33:45 , 최종수정 : 2019-10-31 20:33:45, 오도현 기자



책 소개


 <아픔집>은 마진오 작가의 에세이다.

 아프면 외롭다. 하지만 외로워야 알 수 있는 게 있다. 우리는 어떻게 고립되고 또 이어지는 걸까. 

 작가는 자질구레한 아픔을 겪으며 마주한 자신과 주변인에 대해 썼다. 그들은 고독한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걸었고, 기우뚱거리며 서로를 의지할 수 있었다. 

 책은 구내염부터 허리 디스크까지, 아프고 우스운 이야기 열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스토리지북앤필름>



저자 소개


 저자: 마진오



목차


 총 146페이지



본문


 남자애는 2년 넘게 취업을 준비했다. 철강회사의 영업직 신입사원으로 들어갔다가 퇴사한 이래 쭉 그랬다.


 "술을 엄청나게 마셔. 아저씨들이, 맨날 술이야. 누나, 그쪽 아저씨들 만나봤어? 공장 아저씨들."

 "뭐… 공장 아저씨랑 일해본 적은 있는데, 난 아크릴 공장만 가봐서."

 "철강 쪽 아저씨들은 진짜 장난 아니야."


 그는 나와 만날 때도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종교적 이유는 아니고 그냥 술이 안 받는 체질이라고 했다. 술을 즐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회식도 무슨, 맨날 해. 일찍 안 끝내."

 "너무 싫다."

 "감자탕집 맨날 갔었어."


 그러다 보면 4차까지 가는 날이 비일비재했다고. 반년에 한 번 회식을 하고, 그나마도 2차까지 따라가지도 않는 나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나라도 그만뒀을 거야."

 "누난 지금 회사 잘 다니고 있잖아."


 회사는 쉬는 중이었다. 모두가 기피하는 팀에 손 들고 들어가고, 행정과 실무 두 방면에서 재앙과도 같은 시기를 겪고, 허리디스크까지 걸린 나는 우울증 진단서를 들고 회사에다가 석 달짜리 병가를 얻어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병가를 내기 서너 달 전이었다. 현대 연애 생활의 필수품 데이팅 앱을 통해서 만났다. '섹스의 맥도날드'라고도 불리는 이 앱은 애초부터 즉각적이고 편리하고 빠른 섹스를 겨냥하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백 명의 사람과 원나잇 하는 것보다 한 사람과 백 번의 관계를 누리는 편이 경제적이어서, 다들 적어도 석 달은 만날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프로필을 올렸다.


 남자애와 나는 석 달을 이미 넘겨 꽤 안정적인 관계에 접어들었다. 물론 사귀는 관계는 절대 아니었다. 우리 둘 다 애인을 만난다면 이것보단 괜찮았으면 좋겠다… 는 소망을 은밀히 품고 있었다. 거기다 취미도 취향도 전혀 맞지 않았다. 나는 한국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데 남자애는 개봉한 영화는 다 봤다. 나는 운동에 큰 관심이 없는데 남자애는 헬스와 농구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나는 엄마가 바리바리 싸다 준 영양제도 이틀에 한 번 겨우 먹는데 남자애는 직구까지 해서 이런저런 성분을 챙겨 먹었다. 다른 점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맞는 건 몸뿐이었다. 


 - 그의 아킬레스건, 54페이지 중에서 -



 "허리는 이제 괜찮아요?" 

 

 정형외과 선생님이 물었다. 한 달 전 나는 재채기 때문에 여길 찾았다.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샤워하고 난 맨몸으로 거실 한가운데 서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찾아온 간지러움에 크게 재채기를 했다. 흐앗추! 그러자 코와 입으로 쏠려야 할 압력이 허리를 타고 내려가 나를 무너뜨렸다. 나는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몸을 구부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한참 지나도 가라 앉지 않아 가여운 점심 약속 상대에게 연락했다.


 저… 재채기했는데 허리가 잘못된 것 같아서요… 


 카톡을 보내면서도 상대방이 그걸 믿지 않을 거란 느낌에 사로잡혔다.


 정형외과 의사는 허리 통증이 디스크와는 관계가 없으며, 단순히 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물리치료실에서 뜨거운 원적외선기에 허리를 지지고 나자 나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접수원이 당황할 정도였다. 걸음마다 끙끙대며 건물을 나서자 비가 장대처럼 쏟아졌다. 그 와중에 나는 서브웨이에 들러 샌드위치를 하나 포장해갔다.

 

 식탁에 서서 샌드위치, 제로 코크, 크랜베리 쿠키를 해치우고 나서 나는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자고 일어나면 낫지 않을까. 하지만 오후가 되어도 상태는 나빠지기만 했고,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주로 예정되어 있던 제주도 여행을 취소했다. 친구는 다른 동행을 구해야 했다. 울적하게 누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맞이한 다음 날,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허리가 나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물론, 허리는 괜찮았다.

 

 "허리는 멀쩡해요. 전에는 정말 그냥 삔 거였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오늘은 갈비뼈 부근이 아파서요. 숨 쉴 때랑 움직일 때 갈비뼈 쪽이 너무 아파요."


 - 웃지 않아 생기는, 132페이지 중에서 -






Copyrights ⓒ 뮤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오도현기자 뉴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