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작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랑

<페이지스 1집 - 사랑한 후에> 저자 조민예, 오종길, 이도형, 성현

입력시간 : 2019-10-31 16:34:19 , 최종수정 : 2019-10-31 16:34:19, 허상범 기자



책 소개


 <페이지스 1집 - 사랑한 후에>는 조민예, 오종길, 이도형, 성현 작가의 소설집이다.

 'pages'는 여러 사람의 'page'가 모여 완성된 책으로, 매 권 특별한 주제(혹은 문장)와 장르 안에 다양한 글을 엮어 만들어내고 있다.

 첫 번째 pages는 '사랑한 후에'라는 하나의 문장을 소설이란 장르로 풀어냈다.

 조민예, 오종길, 이도형, 성현. 독립출판을 통해 꾸준히 책을 만들어 온 네 명의 작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각각 다른 시간과 공간, 각각 다른 대상과 방향성을 가진 이야기 속에서 사랑이 지나간 후 남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출처: 다시서점>



저자 소개


 저자: 조민예, 오종길, 이도형, 성현


 조민예

 : 번역도 하고, 작사도 하고,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 일도 한다. 가끔은 글을 쓰고, 가끔은 꿈을 꾼다.

 <동화인듯 동화아닌 이야기집>, <화가의 시선>, <있는 그대로 아름다워>, <낡은 우울의 세계로 오세요> 등


 오종길

 : 합정과 상수 사이 책방에서 노동하고, 사이사이 경계의 글을 쓴다.

 <나는 보통의 삶을 사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길 바랐다>, <같은 향수를 쓰는 사람>, <속옷을 고르며>, <저크 오프> 등


 이도형

 : 영화를 만든다. 해피엔딩 강박증이 있다. 바다를 좋아한다. 떠돈다. 금오산 호수와 혜화동을 자주 걸었다.

 현재는 속초에서 시를 쓰고 있다.

 <오래된 사랑의 실체>, <이야기에 가까운> 등


 성현

 : 서울에서 시를 쓰고, 수원에서 책을 엮었다. 춘천에서 편지를 썼다.

 <씨, 발아한다>, <매트로놈>,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등



목차


 머리말  6


 조민예  10

 - The Leftovers : 남겨진 음식, 남겨진 기억, 남겨진 사랑

 - essay 작은 것들이 모인 하루

 

 오종길  36

 - 봄눈을 기다려

 - essay 떠난 사랑의 안부는 남겨진 친구의 몫이라


 이도형  72

 - 곡

 - essay 잔몽


 성현  106

 - 민트맛 아이스크림

 - essay 가든(사용법을 참고하세요)

 

 맺음말  152



본문


 #1

 딱히 요리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라는 난제의 답은 항상 전자였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살아가는 기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 짧은 이야기에는 '아보카도'라는 단어가 무려 20번 등장한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아보카도'만큼은 아주 확실하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아보카도는 사랑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보카도 샐러드' 레시피는 내가 즐겨 먹는 레시피 그대로이다.


 - essay 작은 것들이 모인 하루, 33페이지 중에서 -



 2014년 여름의 끝자락, 기는 청담동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첫 직장으로 선택했다. 물론 레스토랑에서 기를 선택한 결과였지만 기는 자신이 그곳을 선택한 것이 원인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 결과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기의 선택과 레스토랑의 선택이 맞아떨어져 취업과 동시에 상경한 기의 출퇴근길은 대략 이러했다.

 출근하는 기의 모습은 청담역에서 발견되었다. 청담역 9번 출구로 나온 기는 출구 앞 정류장에서 버스로 환승했지만, 고작 한 정거장을 간 뒤 하차했다. 이마저도 처음 직장 생활을 할 적에는 걸어 다닌 거리였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은, 그를 제외한 9번 출구로 나온 사람들의 팔 할이 버스를 탄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맞춘 듯, 빠른 걸음으로 걸어 9번 출구로 나오면 곧 버스가 도착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한 정거장을 이동해 청담사거리에 내리면 멀지 않은 곳에 거의 첫 직장인 레스토랑 S가 있었다.

 

 - 봄눈을 기다려, 39 페이지 중에서 -



 안녕하세요, 작가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 하는데요.

 '사랑한 후에'라는 주제를 받고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을 했나요?

 사실 저는 소설집 『저크 오프』의 표제작인 「저크 오프」를 쓸 때, '사랑한 후에', 그리고 '사랑해버린 후에'라는 말을 오래 곱씹은 적이 있어요. '후에'의 시점에 관해서였죠. '사랑한 후에'에서 말하는 시점이 사랑하게 된 이후, 다시 말해 사랑하고 있는 중을 말하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사랑을 하고 사랑이 지난 뒤, 사랑이 끝난 시점을 말하는 건지를 말이죠.


 - essay 떠난 사랑의 안부는 남겨진 친구의 몫이라, 65페이지 중에서 -



 영은

 -

 모든 풍경이 멈춘 듯이. 하늘은 불그스름했고 강의 푸름 위로 붉음이 번졌다. 해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수면에는 잔물결 하나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침묵해야 할까. 세계는 그리고 나는. 영은은 생각하며 강가의 풀 위를 걸었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 추웠으나 지금은 볼이 따뜻했다. 소리 없이 번지는 붉은 윤슬 때문인지도 몰랐다. 손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영은은 얼마나 걸었나 궁금하여 손목을 보았으나 항상 차던 얇은 손목 시계는 거기에 없었다. 영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계를 어디서 풀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꽤나 걸었지만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았다. 영은은 멈춰 서서 뒤돌아 보았다. 풀 위로 남은 발자국 흔적 하나조차 없었다. 그녀는 그만큼 가벼웠다.


 - 곡, 75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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