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우린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 혹은 믿음으로

<나란한 얼굴> 저자 엄지용

입력시간 : 2019-10-28 00:29:25 , 최종수정 : 2019-10-31 15:48:07, 허상범 기자



책 소개


 <나란한 얼굴>은 문단과 출판사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문학 활동을 하는 엄지용 시인의 4년 만의 시집이다.

 2014년부터 독립적으로 <시다발>, <스타리스타리나잇>을 출간한 엄지용 시인은 오랫동안 지은 시 69편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이번 시집은 자상하고 친절한 엄지용 시인의 특유의 온도가 지난 작품보다 심도있게 담겨있다.

 엄지용 시인의 시집 <나란한 얼굴>은 더욱 진해진 시인만의 언어로 독자들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출처: 다시서점>



저자 소개

 

 저자: 엄지용


 

목차


 총 110페이지



본문


 아빠는 하필 등 한가운데가 아파서 전화를 했다. 가장 자리가 아프면 혼자 파스를 붙이겠는데 하필 한가운데가 아파서 전화를 했다. 혼자서는 가장자리만 어루만지다가 내게 전화를 했다.


 아빠는 항상 가장자리에 섰었다. 가운데는 내 자리였고, 아빠의 자리는 항상 가장자리. 가장의 자리를 가장자리라고 부르는 건 아닐까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아빠네라 부르고, 결혼 전에는 그냥 우리 집이었던 그 집에 갔다. 아빠는 등을 어루만지며 누웠고, 나는 아빠의 아픈 등 한가운데를 어루만지다 파스를 붙였다.


 내 자리는 가운데였고, 아빠가 아픈 곳은 가운데였다. 파스를 그 위에 붙인다. 아빠에 손이 닿지 않는 가운데.


 파스를 붙이곤 괜히 그 옆에 가장자리를 어루만진다. 아빠의 손이 닿던 유일한 곳. 아빠가 자꾸 만져서 괜히 더 닳고 닳은 것 같은 자리. 아빠의 자리. 이름부터 무거워 말하다 자꾸 놓아버릴 것만 같은 자리. 가장자리.


 - 가장자리, 34페이지 중에서 - 



 골목을 들어서면 며칠째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깨진 거울이 버려져 있다

 그 앞에 서면 내가 여럿이다

 깨진 조각마다 내가 서 있다


 나는 그제야

 왜 나는 너로 소란스런가를 알았다

 

 너는 내가 깨질 때마다 늘어났다

 

 깨질 때마다 늘어난 너는

 마음의 조각마다 서 있었다


 - 깨진 거울, 20페이지 중에서 -



 언제든 핑계 하나는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든 아쉬워할 후회 하나 남겨두어야 하고 

 언제든 돌아갈 사람 하나 남겨두어야 한다

 

 그리곤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

 

 남겨두어야 한다


 - 남겨두어야 한다, 87페이지 중에서 - 



 바다를 보던

 사람의 눈빛은 바다를 담아내고

 단풍 넋 놓고 바라보면

 눈에도 단풍이 들 듯

 

 사랑하는 모양 진하게 보고 있노라면

 내 눈에도 그 사랑 서서히 물들어 올 것만 같다


 사랑스러운 눈빛은

 보내는 눈빛이 아니라 비치는 눈빛 임을 그제야 알게 된다

 

 서로 사랑스레 바라보던 눈빛의 의미는

 우리가 우리에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 주었는지를 증명한다


 언젠가 내 눈빛이 사랑스럽다 말했던가

 당신이 비친 내 눈빛이다


 사랑스러운 눈빛은

 보내는 눈빛이 아니라 비치는 눈빛 임을

 당신의 눈빛이, 나의 눈빛이 증명한다


 - 눈빛, 22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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