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보다 간결하고 강렬했던 포옹의 기억

<사람은 사람을 안아줄 수 있다> 저자 이도형

입력시간 : 2019-10-16 00:13:17 , 최종수정 : 2019-10-16 00:17:41, 김미진 기자



책 소개


 <사람은 사람을 안아줄 수 있다>는 시집 <오래된 사랑의 실체>, <이야기와 가까운>을 쓴 이도형 작가의 세 번째 책으로, 시와 소설, 에세이의 경계에서 쓴 소품집이다.


 작가는 말한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은 말할 수 없는 마음이야.

 어떤 말보다 간결하고 강렬했던 포옹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언어와 언어 사이의 거리를 걸어와 말없이 가슴과 가슴을 포개었습니다.

 그럴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안아줄 수 있다는 문장이 소망이 아닌 의지의 문장인 이유입니다.'

 

 힘든 순간 곁에 있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 것으로 위로를 받을 때도 있지만, 힘들어도 말하지 않고 속마음을 내비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작가는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을 안아주는 것, 포옹은 위로이자 공감이라고 말한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못하는 순간. 이도형 작가의 <사람은 사람을 안아줄 수 있다>는 조용한 포옹이 되어 독자들의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이도형


 시인 이도형은 예술창작집단 '시울'을 작명했다. 시집 『오래된 사랑의 실체』, 『이야기와 가까운』을 썼다. 독립영화 『오래된 사랑의 실체』를 공동으로 각본/연출했다. 단편영화 『레몬』을 제작했다. 뮤지컬 영화 『렌트』를 셀 수 없을 만큼 보았다. 해피엔딩 강박증이 있다. 현재는 속초에서 글을 쓰고 있다.



목차


 총 126페이지



본문


 사람은 사람을 안아줄 수 있다. 이건 소망이 아닌 의지의 문장이다.


 우리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고향도 없고, 학교도 없고, 서울도 없고, 출근도 없고, 만남도 없고, 누구도 없는 곳으로.


 작은 불빛 아래 나는 당신의 손을 잡았고 당신은 창밖을 보았다. 서리 가득한 유리에 흘러내리는 세계를. 당신의 눈망울이 비춰졌다가 내 문장들이 깜빡거리다가. 논리와 함께 전부 사라지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은 말할 수 없는 마음이야.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이었고. 다만 우리는 낮을 피해 밤으로 향했다가 밤마저 지우려 했으니. 언덕을 건너니 바다가. 바다 저편엔 섬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어디까지 가야 해. 나는 모르겠어. 나도 그래. 우리는 왜. 

 어떤 예감이 불현듯 흘러 들어서. 이방의 해변에서 막막하게 모래를 밟는데. 우리가 쓸려온 것일까. 바다가 밀려온 것일까. 지금이 대체 언젠지,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어서. 

 주저앉은 모래사장에 각자 편지를 쓰는데. 동틀 무렵 파도에 녹아 우리와 함께 사라진.


 - 첫 문장을 당신에게, 10페이지 중에서 -



 나는 당신 목소리의 굴곡을 기억한다. 방언과 순간의 감정이 뒤섞여 오롯이 당신만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짧은 음악을. 당신의 집이 있던 언덕을 함께 오르면서 내가 부끄럽게 꺼냈던 말을 기억한다. 그날 밤의 습도를 기억한다. 당신이 등 뒤로 멨던 가방의 색을 기억한다. 거기서 꺼낸 펜으로 썼던 문장을 기억한다. 가로등 불빛이 듬성듬성 비췄던 그 골목에서. 그림자가 져서 보지 못했던 마음이 있다. 그 시간의 골목에 남은 기억들을 기록한다. 감이 주렁주렁 열려서 툭 떨어진 붉은 마음을 기억한다. 감은 달콤 씁쓸하고 씨앗은 매끄럽지만. 

 삼킬 수 있는 것들은 삼켜서 기억하고, 삼키지 못한 것들은 여전히 남아서 기억한다.


 - 기억, 80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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