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을 닮은 서점, 순, 情책방

[독립책방 인터뷰] 글: 정은길 기자, 사진: 최우근 사진작가

입력시간 : 2019-10-15 18:32:41 , 최종수정 : 2019-11-09 16:25:14, 정은길 기자

2017년 10월 9일 한글날, 서울 강동구 동남로길에 순정책방이 문을 열었다. 처음부터 의도하진 않았으나 서울대명초등학교 근처에 위치해 있어 어린이 손님도 많이 드나드는 독립서점이다. 외국어 이름으로 간판을 올리는 게 익숙한 요즘, 순정책방은 어떤 마음으로 독자와 책을 연결하고 있는 걸까. 순정책방의 김예 주인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런데 제일 먼저 듣게 된 이야기는 책이 아닌, 농사였다.


“제가 농사에 관심이 많아서 도시 텃밭을 7년째 하고 있어요. 농산물에 관심도 많고요. 막상 농사를 지어보니까 생각보다 농부들이 너무 힘들게 일하시는 거예요. 내가 뭔가 브릿지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게 ‘농부의 순정’이었어요. 자매품으로 ‘어부의 순정’도 있었어요(웃음).


순정책방의 내부 모습이다.<출처:최우근 사진작가>


그런데 농산물 유통이 너무 어렵고 유기농 등의 인식이나 현실이 생각보다 애매하더라고요. 동네 마트에서 저렴한 채소를 구하기도 쉽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중에 책방을 열 때 그냥 끝에만 딴 거예요, ‘순정’을. 제가 농사 짓는 곳이 가래여울인데 거기 가래나무가 있어요. 시간 여유가 있을 때면 그 아래 쉬고, 책도 보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가래 나뭇잎을 넣었고요, (책을 통해) 저자와 독자의 순수한 마음이 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쉼표는 책을 막 소비하듯 읽지 않고 천천히 읽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담았습니다.


모든 건 책방 주인장 마음


그래서 ‘순정책방’은 그냥 ‘순정책방’이 아니라 ‘순,情책방’이다. 책방 이름을 주인이 마음대로 지었듯이 책방 운영 방침 역시 주인장 마음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여간 살뜰한 게 아니다.


“제가 딸 셋의 막내인데요.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기 삶을 살지 않잖아요. 저희 엄마만 봐도 그렇고. 그래서 저는 이 동네에 사는 엄마들이 아이가 학교에 가고 없을 때 자기 책 한 권 사러 오길 원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신

기하게도 밤에 아빠랑 같이 책을 사러 오는 어린이 손님도 있고, 가족끼리 저녁에 외식을 하러 손 잡고 지나가다 들르는 가족 손님도 오세요. 되게 바람직한 모습인데 아빠 월급날 아이들 손잡고 와서 책을 사가시더라고요. 한 달에 한 번씩 꼭 와서 책을 사가시는 어머님들도 있고요.”



그렇다면 순정책방이 추구하는 컨셉은 무엇일까? 어떤 책을 주로 다루는 지도 분명 주인장 마음일 것이다.



“저희는 동물, 자연, 그래픽노블, 그림책, 여성 관련 콘텐츠까지 있습니다.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제 마음에 들어야죠(웃음). 우선은 스토리가 마음에 들어야 해요. 모든 책방 주인들이 마찬가지일 걸요. 자신의 마음에 든 책이 있다면 그 책이 잘 팔리지 않더라도 서점에 들이는 것 같아요.”



독립서점에서는 기성 출판물을 비치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또한 주인장 마음이란다.


“원칙은 없어요. 독립서점은 ‘소규모 출판물 북숍’이라고 말하는 게 제일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이태원 등 핫플레이스 쪽에서 운영하는 독립서점 몇몇 곳은 정말 독립출판물만 팔거든요, 1인 출판자들이 만든 책들. 순정책방에는 그런 1인 출판자의 책이 많지만, 기성 출판사 책 중에도 의미가 있다면 비치를 해요. 대형 출판사에서 만든 책도 잘 찾아보면 저희가 알지 못하는 좋은 책들이 되게 많아요.


예를 들면 ‘사계절출판사’는 누구나 다 아는 곳인데, 일본에 있는 미리내라는 여성 단체와 함께 피해받고 소외된 분들의 삶과 사진을 담은 《보통이 아닌 날들》을 출판했어요. 저는 이런 책이 사계절출판사에서 나와서 되게 반가웠거든요. 순정책방에서는 기성 출판사의 책을 고른다면 이런 류의 책을 들여오죠.


순정책방 내부와 외부 모습이다.<출처:최우근 사진작가>



아무리 사심이 섞인 운영을 한다 하더라도 독립서점은 엄연한 자영업자다 대형 종합출판사도, 대형 서점도 모두 경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독립서점은 여기저기서 생겨난다. 과연 이들의 생존 가능성은 괜찮은 걸까? 생존 1년 반이 지난 순정책방은 일주일에 4일만 문을 연다.



“3일은 다른 일을 해야 돼요. 아마 대부분의 책방 사장님들은 겸업을 할 거예요. 책방이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설마 그렇게 어렵겠어?’ 하는 마음으로 책방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근데 정말 어렵거든요. 저는 오랫동안 스페인어 공부를 해왔는데 평소에 스페인어 쓸 일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저처럼 오래 공부를 해온 사람들끼리 ‘계속 공부를 해보자’ 해서 책방을 오픈하면서부터 모였거든요. 그런데 이런 모임에 동참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그 스터디 모임을 계속하고 있어요, 책방에서. 제가 초보는 충분히 가르칠 수 있어서 이 모임으로 월세 부담을 줄였어요. 책 파는 수익은 많이 어려워요. 책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요. 아트북 같은 경우는 15% 남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온라인 서점에서 사는 게 더 낫거든요. 배송도 하루 만에 오고, 10%도 깎아주고. 저희는 다 돈을 내고 사거든요. 크고 오래된 서점들은 위탁을 받거나 후불제로 운영을 하는데 저희는 책을 살 때마다 모두 현금 결제를 해요. 팔리면 돈을 주는 게 아니라 먼저 제가 사는 거예요. 반품이 안 되는 조건으로. 매일 생각을 하죠. 책방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요. 캐나다 선생님이랑 영어 공부를 하는데 “내가 책방 주인인데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서 너무너무 힘들다.”라고 했더니 자기네도 동네 서점이 아마존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독립서점의 특징에 대해 잘 모르는 손님들은 그냥 동네 서점으로 생각하는 바람에 베스트셀러 책을 찾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럴 때 책방 주인장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요즘 핫한 책이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잖아요. 이 책은 동네책방 버전이 따로 있는데요. 직거래를 할 수 있는 기준이 10부 이상이에요. 솔직히 동네책방에서 10부 이상 사는 건 굉장히 큰 부담이거든요. 그런데 그 부담 여부를 떠나서, 김영하 작가는 제가 굳이 안 팔아도 잘 팔리는 책의 작가잖아요. 손님들이 신간 있느냐고 물어보면 제가 안 팔아도 너무 잘 팔리는 분이라 굳이 갖다 놓지 않는다고 양해의 말씀을 드리죠. 그러면서 제가 고른 책들을 권하는데 취향이 맞으면 사시는 거고, 아니면 큰 서점으로 가시는 거죠.”



책방지기의 지인들은 그녀의 생계 터전을 다른 방식으로 오해하기도 한단다.


“사람들이 제가 다른 일을 하면서 서점을 하니까 이걸 취미로 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에이, 취미로 하잖아. 너는 다른 직업이 있잖아.’ 이렇게요. 저는 절실하고 열심히 하는데. 절대로 모든 책방의 사장님들은 서점을 취미로 하지 않습니다. 엄연한 자영업자예요. 수수료도 많이 나가요. 슬픈 이야기긴 한데, 많은 책방 사장님들의 꿈은 자기가 책방 일을 하면서 최저시급만큼의 돈을 받아가는 걸 거예요.”



최저시급을 받아가는 게 서점 주인들의 꿈이라니, 이렇게 쉽지 않은 길을 순정책방 주인장은 왜 계속하고 있는 걸까? 그녀가 찾은 답은 단골 손님들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됐나?’ 하는 마음을 먹을 때면 주변 분들이 감동의 포인트를 줘요. 제가 그림을 되게 못 그리거든요. 우리 서점의 마스코트가 되길 원했지만 너무 활달해서 같이 출근할 수 없는 저희 집 강아지, ‘찌루’ 그리는 연습을 했어요. 나름 만족스럽게 그린 그림이었는데, 어느 날 손님 한 분이 직접 그림을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태그를 걸어주셨어요. 그러면서 며칠 후에 그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오신 거예요. 이것도 감동인데, 그 그림을 1천 장을 뽑아주셨어요, 굿즈처럼. 이걸 다 쓸 때까지 이 자리를 지켜달라고 하셨는데, 이런 감동을 받을 때가 있죠. 책은 기준이 되게 높은 것 같아요. 1만 원짜리 티셔츠나 8천 원짜리 조각 케이크는 쉽게 사면서 그림책이 15,000원이 넘어가면 정말 정말 심사숙고를 하시거든요. 만 원 이하의 책들도 되게 많거든요. 가까운 독립서점에 들러서 책방 주인이 추천하는 책도 좀 보시고 책을 좀 사시면 어떨까 싶어요, 커피를 사 마시는 것처럼. 책방 주인이 커피도 준단 말이죠. 강동구에 저희랑 비슷한 서점이 있었는데 문을 닫았어요.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자기는 오지 않으면서 이 공간이 오래 있길 바라거든요. 근데 그 말이 진짜는 진짜인 것 같다고. “안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이 말이 거짓은 아닌데, 본인은 기여를 안 하는 거죠. 그래서 조금만 마음을 써주시면 좋겠어요. 책방 사장들이 되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거든요.”



말해놓고 보니 슬프다면서도 끝까지 밝고 유쾌한 웃음을 잃지 않는 순정책방의 주인장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순정이라는 단어가 조금도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순정책방 주인장의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공간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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