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행사 취재]책과 맥주와 사람과 웃이 흘러 넘쳤던 곳, '책맥페어링'

글: 정은길 작가, 사진: 임주하 기자

입력시간 : 2019-10-14 17:31:07 , 최종수정 : 2019-10-21 22:30:35, 권호 기자

유난히 날씨가 맑고 화창했던 7월 13일 토요일 오후였다. 주말 특유의 설렘과 활기를 느낄 수 있는 행사 현장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행사의 이름은 무려 ‘책맥 페어링’이었다. 책과 맥주의 조합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지만, ‘책맥페어링’의 현장은 무려 양조장이 있는 ‘슈타인도르프’ 였다. 양조장과 책의 만남, 그런데 그 책이 독립출판물이라면? 다양한 수제 맥주의 종류만큼이나 저마다 매력적인 색을 뽐내고 있는 독립출판물의 조합이 어쩐지 잘 어울려 보였다.

 

책맥페어링 현장의 모습이다.<출처: 임주하 기자>

 


30여 팀의 독립출판 작가들과 독립서점이 행사 현장을 다채롭게 꾸몄고, 6가지 종류의 맥주를 골라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흥겨운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 음악이 가득 메웠다. 맥주와 독립출판의 조합이 어쩌면 이렇게도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독립출판물과 맥주는 완벽한 한 쌍의 단짝 같았다. 그런데 수제 맥주 전문점인 ‘슈타인도르프’는 어쩌다 독립출판물과 함께하게 됐을까? ‘슈타인도르프’의 강돈희 실장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순정책방과 인연이 있어요. 예전엔 순정책방에서 시 음회를 했었고, 이번엔 저희 공간에서 책맥페어링을 하게 됐죠. 저도 이런 행사가 생소하지만 독립출판 관련 콘텐츠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함께하기로 한 거예요. 솔직히 요즘 책을 많이 읽는다고 보긴 어렵잖아요? 그게 너무 안타까웠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서 좋은 책들이 많이 알려지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모든 독립출판물은 저마다의 빛으로 반짝이는 보석이다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 그러나 70년대 중후반에서 80년대까지 유행했던 음악 스타일이라서, 지금 들으면 언뜻 복고 느낌도 나는 스타일. 이를 일컬어 ‘시티 팝’이라고 부른다. 이 ‘시티 팝’의 느낌을 고스란히 책에 담으면 에리카팍 작가의 《도시시》가 된다. 소소한 사람들의 수상한 이야기를 담은 《아파트먼트》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출판사 등록을 하고 직접 글을 쓰는 전광은, 김예은 작가는 “옆집에 누가 살고, 우리 일상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관심을 갖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소소하지만 수상한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독립출판 작가로 활동한 지 5년째라는 김종완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기성출판도 해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손으로 책을 짓는 게 좋다고 말하는 눈빛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나도 몰랐던 나의 색을 발견하는 기쁨, 목적 없이 흘러가듯 살다가도 결과적으로 얻어걸리는 게 있다는 그의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이집트 ‘시와’ 지역과 사랑에 빠져 필명도 ‘시와’를 쓰는 시와 작가는 지난 마켓에서 만난 독자의 맞춤 주문에 맞게 표지 색 변경 등을 반영한 책을 가져왔다. 직접 손으로 책을 만드는 시와 작가에겐 익숙한 일이다. 그녀는 직접 만든 책을 사이에 두고 독자와 소통하는 일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책맥페어링에선 맥주까지 함께였으니 흥이 2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른의 혼잣말》, 《아침은 오지 않아》 등을 쓴 최수민 작가는 ‘새벽고양이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하다. 특히 《아침은 오지 않아》는 잠 못 이루는 새벽에 들으면 좋을 ASMR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책 속에 QR 코드를 담아두었다. 그녀의 또 다른 작업은 프로젝트 메이지를 통해 일서를 번역해 선보이는 작은 책이다. 지인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그러나 소개되면 좋을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인데, 최수민 작가 바로 옆에 자리한 최은경 작가가 프로젝트 메이지를 함께하는 사이다. 최은경 작가는 《맥주를 마셔도 사람이 죽지 않는 소설》을 현장에 들고 왔다. 첫 책을 통해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두 번째 책의 제목이 그렇다는 설명이 재미있다. 친구들과 비정기적으로 만드는 문예지, 〈어론Alone〉의 멤버이기도 한 그녀의 다음 책 제목은 무엇이 될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자세한 문장보다 하나의 선이 곧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가장 먼 곳에서 온 책맥페어링 참여자는 나래 작가였다. 무려 경주에서 달려온 그녀는 5개월 동안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기록한 내용을 담은 《걷는 책》을 선보였다. 현장 테이블을 좀 더 다채롭게 꾸미고자 자신의 뮤즈인 고나리의 그림을 담은 달력까지 선보였는데, 애정을 듬뿍 담아 그린 그녀의 그림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인상적인 그림은 더 있었다. 5년간 수영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은 윤누리 작가의 《풍덩》은 아주 특별한 그림책이다. 연필 스케치만으로도 수영장 풍경, 물의 질감 등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내면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다음 책을 준비 중이라는데, 그녀의 그림이 또 어떤 놀라움을 줄지 기대가 크다.

〈하와이안 레시피〉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 밤에 뜨는 무지개에 반해 자신의 이름을 ‘문보우’라 지은 작가의 그림에는 탁 트인 자연이 가득했다. 문보우 작가의 《EMPTY SPACE》는 출산 직후 산후조리원에서 답답한 생활을 하던 중 직접 가보고 싶은 곳을 그린 그림이 가득하다. 이제는 아이와 함께 《파인애플》, 《하와이안 베이버》 등의 책 작업을 하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개성을 드러낸 한 장의 그림들을 엮어 엽서북으로 만든 박희재 작가의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개인 작업들을 모아 책맥페어링에 참여했다. 엽서북뿐만 아니라 간단한 스토리가 있는 그림책, 《Birth》를 통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비 오는 날과 동물을 좋아한다는 오온옥 작가 역시 《Drawing Vol.1》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표현 방식을 자유롭게 선보였다. 동물들 중 닭의 무늬가 생각보다 다양해 그리는 재미가 있다는 설명이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비를 표현한 《Raining day》도 멋진 책이었다.

책맥페어링 현장의 모습이다.<출처: 임주하 기자>


출판사와 독립서점은 다양한 콘텐츠를 즐겁게 전하는 메신저다

등단을 하지 않고도 작가가 되는 법은, 어딘가에 글이 꾸준히 실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문학잡지 〈영향력〉을 통하면 된다. 〈영향력〉은 ‘키친 테이블 라이팅’이라는 부제를 단 계간 문예지다. 2016년 2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지금은 12호를 준비 중이다. 글이 줄 수 있는 영향력을 믿는 은미향 편집자는 작가에게 글을 실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향력〉은 좋은 글을 쓰는 작가 발굴도 한다. ‘밤의 출항’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며 나일선 작가의 소설집도 출판했다. 그들이 말하는 좋은 글, 좋은 영향력을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었다.


좋은 영향력은 동물 책만 다룬다는 출판사, ‘동반북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독립서점은 저마다의 테마가 있는데, 동반북스 역시 출판사로서 너무 명확한 색을 보여줘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책맥페어링 참여 작가들이 동반북스 테이블에 와서 책과 엽서 등을 구입하는 걸 보고 동반이란 단어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동반을 직접 실천으로 보여주는 독립서점, ‘지구불시착’도 책맥페어링에 함께했다. 아직 지구완전정착은 못했다는 김택수 작가이자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지구불시착’에는 손님으로 왔다가 작가로 변신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이 관계가 마냥 유쾌해 보였다. 여러 사람들에게 받은 유언장을 엮어 만든 《유언으로 나마, 유언으로 남아》를 쓴 유야 작가, 《Sweet and Low》를 쓴 이효미 작가, 《늘어진다》를 쓴 수잔 작가 모두 지구불시착 손님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아이캔’ 과정을 통해 책 만들기를 배우고, 드로잉 워크숍을 하는 등 지구에 불시착한 이들이 만들어가는 멋진 이야기가 앞으로도 많을 것 같다.


좋아하는 것으로 일터를 가득 채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꿈을 이룬 사람이 책맥페어링 현장에 있었다. 그 주인공은 ‘스페인 책방’이다. 스페인이 좋아 스페인책방을 연 아내, 그 옆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남편. 그냥 하고 싶어서, 그냥 좋아서 책방도, 출판사도 만들었다는 이들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게다가 맥주가 함께하는 현장에서 이들 부부는 참으로 즐거워 보였다.

반면 얼굴을 보지 못한 책방의 주인장도 있었다. 일주일에 이틀, 그것도 주말에만 운영하는 독립서점, ‘투데이북스’다. ‘머쓰 앤 마쓰’라는 출판사도 창업했지만 생계를 위해 주중에는 펍을 운영한단다. 심지어 책맥페어링에서 ‘투데이북스’ 테이블은 《생각옷장》의 주예슬 작가, 《별 그지같은 게 내리네》의 최수훈 작가가 자리를 지켰다. 만나지 못해 더욱 정체가 궁금했던 ‘투데이북스’. 이틀이 아닌 5일 이상의 영업을 책방으로 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날이 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책맥페어링의 마지막 테이블은 독립서점계의 아이돌, ‘프루스트의 서재’였다. 프루스트의 서재는 주인장이 좋아하는, 그래서 서점에 진열 중인 책을 가져왔다. 그리고 서점에서 운영하는 클래스 작가님들이 자신의 작업물들을 선보였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의 작품을 보면서 독립출판인들의 창작 세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창작자와 독자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책맥페어링은 독립출판작가와 출판사, 독립서점이 함께 어우러진 행사였다. 거기다 슈타인도르프의 수제 맥주까지 함께여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독자’와 함께여서 더욱 빛이 났다. 책맥페어링은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독자’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창작자는 그 작품을 만들어주고 유통시켜줄 출판사와 서점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독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혼자만 만족하는 창작자는 없다. 직접 독자를 만나고, 독자와 소통하고, 독자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책맥페어링 같은 행사가 꼭 필요한 이유다. 독자도 자신과 결이 맞는 멋진 창작자를 늘 원한다. 독립출판물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좋은 작품을, 좋은 작가를, 좋은 출판사를 만날 수 있다. 그렇기에 책맥페어링 같은 행사가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들여 찾아가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접하는 것만큼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고 충만해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창작자와 독자 모두가 만족하며 돌아갈 수 있는 ‘책맥페어링’을 취재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창작자의 열정 넘치는 분위기와, 이들을 알아봐 주는 소중한 독자들 덕분에 독립출판 분야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리라 생각하며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쭉 이어질 책맥페어링 행사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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