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단편집 l 끝내 함께 해내는 힘 l 이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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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9-09-29 16:45:46 , 최종수정 : 2019-09-29 16:45:46, 오도현 기자
2년 넘게 기르고 있는 아몬드페페는 줄기가 길게 뻗는 화초다. 이 아이의 이름은 '꾸미'. 물과 햇빛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지만, 꾸미가 올곧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긴 줄기를 받쳐줄 수 있는 화초 지지대가 필요하다. 이것이 없다면 줄기는 꺾이고 자라는 방향이 엇나가기도 한다. 이런 꾸미를 보살피며, 나는 언제나 화초 지지대와 같은 동료들을 갈망한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야 말로 ‘끝내 해내는 힘’을 갖출 수 있는, 일잘러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혼자로도 문제없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생각만큼이나 여물지 않았던 시절에는 나홀로 쑥쑥 자라는 것을 즐겼다. 짧은 보폭과 빠른 내달림이 선사하는 긴장과 이완은 적잖은 쾌감을 준다. 앞서 있는 이들을 따라잡고 싶다는 초조함, 그리고 남들보다 앞서 있다는 안도감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그 매력에 흠뻑 빠지면 주변 풍경이나 옆에 누가 달리고 있는지 따위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직장인이 되고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뜀박질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었다. ‘일을 한다’는 여정에는 결승점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엄지발가락에 힘을 싣고 발을 굴러봐야 가쁜 숨을 몰아쉴 뿐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일의 갈래나 방향을 끼적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정답이 없는 길을 달리며 호흡을 고르기 위해서는 엄습하는 모호함을 견뎌야 함을,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 맞추며 일할 동료들이 필요함을, 함께 달리면 먼 곳에 다다를 수 있음을 깨달은 건 나중의 일이다.



졸린 눈으로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미식축구 중계를 만나곤 한다. 그래, 규칙은 잘 모르지만 덩치 큰 외국인 선수들이 힘껏 몸을 부대끼는 그거. 난 그때마다 ‘끝내, 함께 해내는 힘’을 떠올린다. 기가 막힌 패스와 눈으로 좇기 힘든 질주는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건 게임의 일부일 뿐이다. 미식축구 팬인 지인의 말로는 야금야금 상대편 진영으로 전진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수많은 태클을 당해도 일단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야 하고, 공을 가진 선수가 최대한 전진할 수 있도록 동료들이 상대편을 밀어내야 한다고.

 

이리 보면 일도 미식축구와 다름없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그럴듯한 아이디어처럼 흘러가지 않더라. 팀의 득점이든 일의 실행이든 혼자 이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료들과 더불어 반대 의견이나 장애물을 밀어낼 힘을,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고 차츰차츰 일을 만들어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런 ‘끝내, 함께 해내는 힘’을 갖춰야만 비로소 터치다운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마음가짐 탓에 근래 가장 소망하는 일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성장하며, 함께 흐리터분함을 헤칠 수 있는 동료를 갖는 것이다. 그 과정이 생각처럼 순탄할 리 없다. 꽤나 지난하고 더디겠지. 그런 동료를 바라는 것이 과한 욕심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답을 보여줘'가 아닌 '함께 답을 찾아보자'라고 말해주는 이들과 같이 일하고 싶다. 나 역시 그런 파트너, 그런 일잘러로 성장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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